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구려-수 전쟁 (문단 편집) ==== 실패한 보급지원 ==== [[양제(수)|수 양제]]는 방패, 갑옷, 옷감, 무기, 화막(火幕, 땔감) 등을 지급하여 별동대를 꾸렸다. 문제는 앞서 말한 보급 체계 때문에 유사시를 대비한 '''100일분의 추가 식량'''을 병사 개개인이 짊어지게 함으로써 병사들의 피로가 더하게 된다. 결국 이러한 추가 식량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길을 가다가 이를 버리는 병사들이 다수 존재했다. 문제를 알아차린 지휘부가 버리면 죽는다고 엄포를 놓자 이번에는 '''[[땅]]을 파고 그곳에 보급품들을 묻어버렸다.''' 하지만 버리면 또 굶게 되니, 별동대는 길의 절반 정도 온 상태에서 식량이 떨어질 판이 되어 대강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방패, 갑옷, 옷감, 무기, 화막에 식량까지 모조리 챙길 정도면 완전 군장 그 이상의 수준이다. 그 정도 먼 거리의 원정을 떠난다면 오래 주둔해야 하니 당연하긴 하지만... 그런 물자들을 보급부대에게 운송하게 하는 게 아니라 병사들이 짊어지라는 건 가히 미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게 말도 안되는 원인은 바로 무게다. 현대 국군에서 군장을 쌀 때, FM대로 꾸릴 경우 20kg에 육박하는 무게 때문에 엄청나게 힘들어진다. 여기에 한 달 쌀 10kg 정도에 인간 1명이 석 달 좀 넘게 버텨야 하니 30kg 짊어진다고 가정하고, 총 '''50kg이나 되는 짐을 짊어지고 [[요동성]]부터 [[평양성]]까지 수백 킬로미터를 행군한다고 가정해보자.''' 그 와중에 [[고구려]]군이 [[게릴라]]를 펼치게 되면 행군의 난이도는 인간이 수행할 수 없는 지경으로 올라간다. 더군다나 길도 평지가 아니라 곳곳에 산길이 있다.[* [[만주]]와 [[한반도]] 북부는 해발고도 2000미터가 넘어가는 높은 산맥들이 많다. 수백 개의 산을 넘어가는 강행군이었던 것.] 당시의 병사들보다 훨씬 영양 상태가 좋고 신체 조건이 좋은 현대의 군대조차도 특전사 같은 최정예병이 아니면 도저히 그 무게를 감당할수 없다. 거기에 평지라고 해도 요즘처럼 도로 사정이 좋지 못하며 좋은 신발도 없고 차량 따위도 없다는 것까지 생각해 보자. 나중에 굶어죽을 걸 알면서도 당장 무거운 군량을 파묻어 버린 수나라 병사들의 고충도 이해가 갈 것이다. 과학기술이 발달한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 때처럼 [[전차]]나 [[철도]], [[비행기]] 같은 운송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고, 준비한 물자가 [[군수공장]]을 기반으로 한 물량전과 달리 기본 물자가 넉넉한 것도 아니며 지리적으로도 물자수송망이 불리하고[* 오만가지 산맥이 있다는 시점에서 물자수송의 난이도는 어마어마하게 올라간다. '''당시에는 [[터널]]이라는 게 없다.'''] 보급부대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파견하려 하지 않은 채 저따위 발상을 했으니 이기지 못하는 게 어찌보면 당연했다. 사실 별동대 전술의 성격상 보급선의 유지는 불가능하다. 별동대는 곳곳에 설치된 고구려의 방어선을 돌파하지 않고 모조리 우회하면서 평양성으로 직행했는데, 이는 별동대의 후방에 고구려군을 고스란히 놔뒀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전투부대보다 전투력이 취약한 보급부대의 안정적인 지원을 생각할 엄두조차 못 할 작전인 셈.[* 드라마이긴 하지만 [[연개소문(드라마)|연개소문]] 42화에서 별동대 지원을 위한 연개소문-이세민 일행이 지휘하는 보급부대가 고구려 조의들의 기습을 받아 보급품을 모두 잃고 빈손으로 별동대 진영에 도착하였다. 후방이 안정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보급부대는 매우 취약하며 안정적인 보급은 불가능함을 알 수 있다.][* 보급부대도 사람과 우마라 식량과 물자를 소비하는데, 강력한 보급부대를 편성한답시고 부대원 숫자를 무턱대고 증원하면 운송하던 물자를 자기들이 다 써버리는 대참사가 벌어진다. 그렇다고 소수여도 강력한 정예부대로 편성하자니 이건 전선에서 싸워야할 정예병을 후방으로 돌리는 행위라 본말전도다. 때문에 보급부대는 필연적으로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전투부대에 비해 열악할 수밖에 없어 전투력을 기대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좋든 싫든 별동대는 자기 보급품은 [[자업자득|모조리 자신이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었다.]] 사실 평양성 공격의 전체적 그림을 볼 때, 애초에 [[우중문]], [[우문술]]의 30만 5천 대군은 평양성 인근에 정박해있는 [[내호아]]의 수군의 병참 지원을 받기로 되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 그렇더라도 요동에서 평양까지의 거리를 각 병사들이 50kg의 짐을 지고 행군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실제로 수나라 군사들은 짐을 땅에 묻는 등 버리는 행위를 일삼았으며, 나중에 평양성 앞까지 도달하긴 했으나 이 시점에서 수나라군의 군량은 바닥이 났거니와 병사들의 상태 역시 도저히 공성전을 수행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이때 내호아는 우중문과 우문술의 30만 대군이 도착하기 전 미리 대기하고 있던 고구려군에게 대패해 바다 멀찍이 퇴각한 상태여서 추가적인 보급 및 지원 또한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따라서 평양성 앞까지 죽을 힘을 다해 진격한 수나라군 30만은 군량이 바닥났음에도 본대를 통한 보급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에 고구려의 성을 제쳐두고 진격한 덕분에 후방에는 아군이 아닌 고구려군이 포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후방으로부터의 보급이나 지원도 불가능했다. 수나라군은 계속 평양성 앞에 머물러 있다간 군량 부족으로 인한 아사자문제는 둘째치고 수나라군의 군량부족을 간파한 고구려군에게 역으로 당할 위기에 놓여 있었기에 퇴각해야만 했다. 그렇게 빌빌거리는 병사들을 어르고 다그쳐서 죽을 힘을 다해 살수까지--군량 없이--퇴각해가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 근방에서 수나라군의 군량 사정을 파악한 고구려군의 대공세를 받는 바람에 사실상 전군이 전멸당했다.]그 내호아가 해로를 통해 실어온 군수물자와 공성용 무기들을 지원받아 왕도인 평양성과 요동 방어선을 분단시키는게 주전략이었으며, 요동성을 함락시켜 국경 밖과 국경 안으로부터 고구려의 왕도권을 완전 포위하는 전략적 그림을 그렸으나, 공명심에 눈이 멀은 내호아가 독단으로 작전을 수행하다 수군이 궤멸되면서 보급이 완전히 끊긴 채 적진 한가운데서 고립되어버린 우중문, 우문술의 30만 별동대는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